이작가 86

겨울 그림

동지를 마중 나온 강추위가 밤새 창문을 두드린다 혼자 놀기는 외롭다고 더욱더 힘차게 휘파람을 불면서 빨리 나오라고 재촉한다 그래 같이놀자 ! 밖으로 나가려다 한 폭의 동양화에 감동한다 영하 10 c를 가리키는 수은주 속에 차가운 바깥 기온과 거실의 습도가 창문에 붙어서 너무나 아름다운 얼음 그림을 그려 놓았다. 이렇게 아름다운 그림을 나에게 선물하려고 밤새 창문을 두드렸던 거센 바람이 어디 있나 보고 싶어서 뒤뜰로 걸음을 재촉한다. 여린 나무 끝에 매달려있는 고드름이 밉다. 추위에 떨고 있는 앙상한 줄기에 주책없이 길게 매달려있는 모습에 겨울의 참모습을 보면서 따스한 봄날을 꿈꿔본다.

이작가 2012.12.20

지푸라기

오래전 새마을 운동이 일어나기 전 60년대까지만 해도 볏짚은 일상생활에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자산이며 생필품이었다. 바쁜 추수철 마당 한쪽에선 벼 탈곡을 하고 뒤에서는 돌아오는 내년까지 사용할 짚 토매를 차곡차곡 쌓아놓고.... 가을걷이가 끝나면 동네 남정네들은 양지바른 곳에 앉아서 지붕 갈이 하려고 마람(짚으로 만든 이엉) 을 엮느라 고된 하루를 보내고서도 밤이면 사랑방 등잔불 아래 둘러앉아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짚신 신고 왔네 를 함께 부르며 지붕 갈이 후 마람을 고정시킬 사내끼(짚으로 꼬아서 만든 새끼줄)를 꼬느라 긴 밤을 새우고... 그러한 일과들이 새마을 운동으로 초가지붕이 슬레이트 지붕으로 탈바꿈되면서 ~먼 ~ 옛날 얘기가 되었다. 그 후 40여 년이 지난 지금 스레트가 발암물질이라고 해서 ..

이작가 2012.10.23

지금 이대로

논쟁은 무슨 일이 있어도 피하세요 결론이 나오지 않을 뿐만 아니라 상처 투성이로 끝나게 돼요. 또. 누구를 설득하려고 하지 마세요 왜. 좋은지 설명을 할 수가 있어도 말 안에 강요가 들어가면 설득당하지 않습니다. 덜 생각하고 덜 미워하고 덜 걱정하고 싶다면 간단해요 마음을 현재에 두면 됩니다 마음. 걱정은 모두 과거나 미래의 영역에 속해 있어요 우리 모두 지금 이대로를 생각해 봅시다 (헤민 스님 말씀 속에서.)

이작가 2012.09.22

유월 유두날

음력 6월 15일은 유두절 우리 고유의 명절이다 유두날은 동쪽으로 흐르는 개울에서 목욕을 하고 밀국수(우리 지방에서는 호박이나 야채전)를 먹으면 한 여름을 아무 탈 없이 넘길수 있다 해서 이날은 항상 천렵을 하며 하루를 즐겼다고 한다. 어느 마을이나 동쪽으로 흐르는 개울을 찾기가 힘들다 갓을 쓴 양반들이 개울에서 멱감고 음식을 먹었겠는가? 이날만큼은 주인 눈치 보지 말고 먼~곳에 가서 마음 놓고 하루를 즐기라는 머슴들에게 호의를 배 푼 것 같다. 오월 단옷날 후부터 지금까지 모심고 김매고 가을보리밭에 뿌릴 퇴비를 장만하기 위해서 풀베기 작업하느라 지친 일꾼들을 위하여 공식적으로 쉴 수 있는 머슴들의 생일 백종(7월 15일) 전에 하루를 쉴 수 있도록 배려한 날 이 유두절 아닐까....? 요새 같으면 월차..

이작가 2012.08.02

호박꽃

호박꽃은 한 넝쿨에 각자 다른 암꽃과 수꽃이 피어난다. 암꽃은 처음부터 줄기에 호박과 암꽃이 붙어서 돋아나고 호박 열매가 달걀만큼 자랐을때 단 하루만 암꽃이 핀다 그 하루동안에 벌들이 찾아와서 수꽃가루를 자기 몸에 발라주길 바래며 꿀을 발라놓고 벌을 기다린다 숫꽃가루를 구걸 못하면 결국 낙과가 되고..... 숫꽃은 4~6일 동안 꿀을 발라놓고 벌들이 들어와서 자기 꽃가루를 옆에 있는 암꽃에 전해주기만 기다리고. 예전에 몸이 통통하고 선머슴처럼 털털하게 다니면 상대를 호박이나 호박꽃에 비유했다. 그래도 호박꽃 속엔 일반 벌들은 들어가지 못하고 밍크코트를 걸치고 등치도 큰 호박벌만 들어간단다.

이작가 2012.07.18

강냉이 (옥수수) 가루

예전 초등학교 다니던 시절 매주 토요일엔 보자기를 하나씩 챙겨서 등교했다. 오전 수업이 끝나면 교무실 앞에 줄을 서서 강냉이(옥수수 ) 가루를 배급받기 위해 기다렸다가 아침에 준비해 간 보자기에 약 2리터의 강냉이가루를 담아서 으기양양 집으로 향하던 때가 있었다. 몇 년 후부터는 미국에서 지원해주는 구호식량이 줄어들어서 강냉이죽을 끓여주게 되었는데 그릇이 없어서 등교할 때 양은 도시락을 준비해 가지고 가서 뜨끈뜨끈한 죽을 받아먹고........ 초등학교 졸업할 무렵에는 노란 강냉이 찐빵을 쪄가지고 가정환경이 어려운 학생들에게만 나눠주게 되어서 그 찐빵을 못 먹게 된 나는 괜스레 짜증이 나고...... 우리 마누라는 그 강냉이 빵을 먹지 못하고 늘 집에 가져가서 동생들에게 나눠주곤 했다네요. 지금은 쌀이 ..

이작가 2012.06.13

보리 단술

망종 (24절기 중 9번째 절기로 보리 수확을 하는 때) 이 가까워지니 들녘엔 보리가 누렇게 익어가고 있다 예전에 어렸을때 보리베기 작업을 하다가 배가 고프면 시원하게 흐르는 물속에 담가 두었던 보리단술을 따라먹던 시절이 생각난다 지난 5~60년도에는 방앗간에서 겉보리를 보리쌀로 가공하는 기술이 부족하여 보리쌀과 흰 쌀을 섞어서 밥을 지으면 밥이 제데로 되지 않아서 보리쌀만 삶아가지고 그늘진 처마 밑에 걸어두고 밥을 지을때면 그 보리밥에 쌀을 한쪽에 약간 넣고 밥을 지었다. 집안 어르신께에는 보리밥과 쌀을 잘 섞어드리고 어머니는 늘 보리밥만 잡수시고....... 더운 날씨 때문에 처마 밑 걸 바구니에 담아놓은 보리밥이 이틀을 넘기지 못하고 잘 쉰다 그 쉰밥을 버리지 못하고 누룩과 섞어서 물을 붓고 아랫목..

이작가 2012.05.18

어머니 날

어머니 날 노래                  높고 높은 하늘이라 말들 하지만                  나는 나는 높은 게 또 하나 있지                  낳으시고 기르시는 어머님 은혜                  푸른 하늘 그보다도 높은 것 같아                                        예전 초등학교 다니던 시절                    5월 8일 어머니날 이 되면 늘 부르던 노래다.                    하늘만 보이는 산간벽지에 살고 있어서 카네이션이라는 꽃은 모르고 자랐다                    늘 어머니 날 만되면 어머니가 계신 학우들은 왼쪽 가슴에 빨간 개꽃(철쭉)을 꺾어서 달고 등교했고                ..

이작가 2012.05.07

곤단초

우리 고장에서는 위에 꽃을 곤 단초라 부른다. 표준어는 골담초라고 부르는데 뼈를 튼튼하게 도와준다고 해서 골담초라 부른단다. 자생력이 강해서 메마른 바위틈이나 울타리 기슭에서도 잘 자라고 줄기에 가는 가시가 많이 돋아있다. 예전 개구쟁이 시절엔 군것질거리가 없어서 가시에 찔리면서도 곤 단초 꽃을 따 먹었다 엄마는 꽃으로 빈대떡을 만들어주고..... 꽃을 머금은 모양이 버선같이 생겼는데 나중에 집에 가서 간식으로 먹을 꽃은 이런 꽃을 따서 주머니에 가득 넣고 집으로 가다가 한잎 두잎 입으로 다 들어가고 빈 주머니만..... 지금은 약재로 쓸려고 막무가내로 베어 가고 그것도 모자라서 뿌리까지 파가기 때문에 할미꽃만큼이나 곤 단초 구경하기가 힘들다. 토종 곤 단초가 몸에 좋다고 소문났으니 이젠 서서히 사라지고..

이작가 2012.04.24

할미꽃

바깥나들이 하기는 조금 이른 봄 양지바른 곳 임자 없는 묘지 옆에 손주 찾아 나선 할미꽃이 추위와 허기짐에 외로이 웅크리고 앉아서 벌들에게 속싹인다. 벌들아 내 향기 머금고 가서 우리 손주에게 나 여기쯤 기다리고 있다고 전해다오. 예전엔 어느 묘지에나 마른 잔디 사이로 할미꽃이 고갤 숙이고 있었는데 어느 때부터인가 할미꽃이 사라졌습니다. 차가운 바람에 깃털이 휘날려도 벌들은 일한다 집안 곳간에 꿀을 담아놓기 위해서....... 반가움에 꽃잎도 활짝 웃어주고. 옆집 울타리엔 개나리도 반겨주네요 아직은 이르지만 봄이 왔는 것은 확실하네요. 어제 뜯어온 쑥으로 쑥 범벅을 만들어준 마누라께 감사하며 우리 모두같이 봄내음을 맡아봐요.

이작가 2012.03.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