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작가 86

파묘

사람이 운명하여 송장을 넣은 관이나 묘지 이장으로 칠성판 위에 유골을 정리해서 땅속에 묻고 흙으로 쌓아놓은 봉분을 묘지라고 부른다. 어느 날 갑자기 가족이 운명을 하다 보면 묘지로 사용할 터를 구할 수 없거나 가난에 허덕이다가 자기가 들어갈 세평의 땅 이 없을 때에는 장례를 치르는 가족들의 마음이 무거웠다' 그래서 이웃집 도움을 받아 깊은 산 골짜기나 응달쪽 그늘지고 경사가 심한 곳도 고맙다고 송장을 묻고 묘지를 썼다. 세월이 흘러 형편이 낳아져서 임야나 밭뙤기를 가질 수 있게 되거나 집안에 궂은일이 자주 생기면 무당이나 지관의 언변에 할 수 없이 남의 땅에 묻어놓은 조상의 묘지를 옮기게 된다 드물게는 남에게 자랑할 수 있는 기와집이 생기게 되면 늦게 나마 땅속에서 잘 자고 있는 조상까지 챙기느라 묘지를..

이작가 2024.03.07

초등학교 동창회

눈물을 흘리며 해어지고 반세기가 지난 예전 추억을 되새기며 두려움과 설렘을 가득 않은 체 친구들의 동네와 흔적을 찾아서 희미한 모습을 그려본다. 졸업식 의자에 앉아서 눈물을 머금고 잘 있거라 아우들아 정든 교실아 선생님 저희들은 물러갑니다...라고서 노래를 몇 명이 불렀는지 기억이 없다. 옥채. 신기. 사비. 반아생이. 소매. 안. 바깥노리산. 안골. 곡천... 산골 천수답의 소농의 아가들로 태어나서 공부 끝나면 책보자기 토방에 던져놓고 강대울로 소꼴베러 가고 언덕배기 뒷밭에서 엄니와 함께 미영밭풀을 뽑던 순진하고 착했던 친구들.... 밤새 뜬눈으로 그리다가 친구들을 만나러 간다. 검게 물들인 머리카락 사이로 힐끗힐끗 백발이 드러나고 만나기가 바쁘게 의자를 손으로 댕겨서 앉을 곳을 찾는 모습에 세월의 흐..

이작가 2023.04.18

돌봄

치매노인 오늘 또 뭐가 없어졌다고 이웃에 소문내고 제가 도둑이라고몰아붙치며 저를 힘들게 하셔도... 어르신을 혼자 두고 대문을 나설 때 가끔 손을 흔들어 주시는 모습이 안타 끼워 저의 눈앞이 흐려져서... 어르신을 보다 더 잘 보살펴드리고 마음이 아파도 참으며 늘 함께 하려고 합니다 어르신과 사이가 멀어지면 저만 힘들어지고 제가 힘들면 결국 모든 대상자 어르신들도 힘들어질 것 같아서요 (주암댐 복지관 ) 생활 관리사. 황 oo

이작가 2021.09.28

고구마 심기

고구마 종순을 밭에 심는 시기가 돌아왔다 예전에는 망종 무렵에 땅이건조하고 경사진 뒷밭에 보리를 일찍 베어내고 비가 오는 날을 택해서 온 가족이 동원되어 물을 주면서 고구마 종순을 심었다. 비닐멀칭을 못하던 때라서 심고 며칠동안은 계속 물을 주어야 뿌리가 돋아났다. 그러나 지금은 보리를 심지않고 두둑에 비닐멀칭을 하기 때문에 예전보다 약 보름 빠른 소만(5월 21일) 무렵이 되면 고구마 심기를 시작한다. 이때쯤 되면 낮 기온이 초여름처럼 따뜻하기 때문에 심으면서 물 주기를 잘해야 종순이 시들지 않고 잘 자랄 수 있다. 심으면서 물을 줄 수 있는 일손이 부족하기 때문에 지난해부터는 나름대로의 경험을 바탕으로 물 주는 공구를 만들어서 사용하고 있는데 편리하고 종순이 시들지 않고 거의다 잘 자라는 모습에 만족..

이작가 2021.05.29

노랫가락 차차차

노새 노새 젊어서 놀아 늙어지면 못 노나니 화무는 십일홍이요 달도 차면 기우나니라 얼씨구절씨구 차차차 지화자 좋구나 차차차 지난 70년대 새마을 운동으로 초가지붕이 스레트 지붕으로 바뀌어 가던 시절 마을회관 라디오에서 자주 흘러나오고 주막집을 나와서 팔자걸음으로 집을 찾아 떠나는 남정네들이 자주 부르던 노래다. 긴 나팔바지로 마을길 먼지를 쓸고 다니던 철부지들이 합창해서 얼씨구절씨구 하고서 노래를 부르노라면 어디선가 어르신들이 나타나서 꾸지람을 하신다. 허우대 멀쩡하고 새파랗게 젊은 놈이 얼른 밭에 가서 일하고 땔나무 베어와야지 노새 노새가 뭐냐고... 샘터 윗집 아들놈은 서울 가서 돈 벌어서 지난 장날 송아지(송아지)를 두 마리나 사줬다는데.... 요놈들아 벌써부터 노새 노새 하다 보면 늙어서는 얼씨구..

이작가 2020.12.30

불면증

여름을 시작하는 하지와 함께 찾아온 때 이른 무더위가 늦은 야밤까지 집안을 후텁지근하게 달구고 있다. 매년 이맘때가 다가오면 에어컨을 켜기도 망설여지고 그냥 침대에 누워서 잠을 자려고 해도 잠은 잘 오지 않고 뜬눈으로 이런저런 잡생각에 젖어서 천정과 눈 맞춤하다가 잠이 든다. 잠을 자려고 전등 스위치를 끄고누워있을 때나 자다가 목이 말라서 아니면 화장실에 갈 일이 생겨서 잠을 깨면 잠을 청하기가 힘들다. 이럴 때마다 나는 늘 사용하는 수면유도 방법이 있다. 눈을 지그시 감고 숫자를 세본다. 입은 다물고 머릿속으로 하나부터 일백까지 세는 것이 아니고 거꾸로 일백부터 하나까지 세는 방법이 다. 백 아흔아홉아흔여 덥 아흔일곱 이런 식으로 하나까지 세다 보면 나도 모르게 잠이 든다. 그래도 잠이 안 들었으면 한..

이작가 2020.06.25

금줄

우리나라는 예부터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강해서 자가격리와 거리 두기를 잘 지켜왔다 집안에 새로운 아기 울음소리가 나게 되면 출산하느라 기력이 쇠약해진 산모와 갓 태어나서 저항력이 약한 아기의 건강을 위해서 집 출입구에 금줄을 쳤다 부잣집은 대문기둥에 금줄을 치고 가난한 초가집은 싸리문 돌담 사이에다 금줄을 걸쳐 외지분들에게 출산소식을 알린다 아들이 태어나면 짚으로 가지런하게 꼬여진 왼새끼 줄 사이에 고추와 숯덩이 솔가지 한지를 3개씩 꽂아서 금줄을 만들고 딸이 태어나면 한지와 숯덩이 그리고 솔가지만 3개씩 왼새끼 줄 사이에 꽂아서 금줄을 만들어 대문 위에 길게 걸쳐준다. 과거부터 농경사회를 이어나갈 일꾼이 중요하게 여기는 남아선호 사상이 관습으로 내려오던 모순 때문에 아들을 낳지 못하고 계속해서 딸만 출..

이작가 2020.04.29

정거장

마을 앞 신작로. 자갈이 없고 다른 곳보다 약간 넓은 곳 표지판도 없고 비를 피할 수 있는 움막도 없는 곳에서 멀리오는 버스를 향해 오른손만 들어주면 정차하여 태워주고 출입문 가까이 걸어오면 차장누나가 창문을 두드려 내려주는 곳 간이정거장. 골딩(코르덴) 바지 주머니에 양손을 넣고 버스가 오는 방향을 한없이 쳐다보다가 또 실망한다. 기다리던 완행버스는 오지 않고 읍내로 바로 가는 급행버스가 먼지만 휘날리며 스쳐가는 허무함에 괜스레 조약돌만 집어서 멀리 던지던 어린 시절의 버스정거장. 검정고무신에 흙먼지가 하얗게 내려앉고 기다림에 지쳐갈 때쯤이 되면 튀밥(뻥튀기)을 가득 담은 광목 밀가루자루를 두 손으로 안고서 버스에서 내리는 엄니가 너무나 반가워서 달려가면 광목자루를 열고 옥수수튀밥을 네게 먹여주시던 엄..

이작가 2020.02.09

스쿨존

요즘 들어 아침으로는 제법 손이 시리다. 차가운 바람을 가르며 출근하면서 초등학교 앞을 지나다 보면 늘 마음이 무거워진다.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할머니들이 깃발을 세우고 학교 앞 건널목에서 등교하는 어린이들을 돕고 있는 모습이 나에게만 보이는 것이 아닐 텐데.... 근래 들어서 여러 언론에 민식이 법. 스쿨존. 어린이 교통사고 등 우리의 꿈나무들과 연관되는 뉴스들이 많이 나온다. 스쿨존 (어린이 보호구역)에 과속단속 카메라를 설치해 놓고 시속 30k 이상 달리는 차량을 단속하는 곳이 있다. 지난 2000년대 초반에는 경찰관들이 학교 앞 교문 사이에 숨어서 과속이나 신호위 반등 교통법규를 위반하는 차량을 단속할 때도 있었다. 웃을게 소리 같지만 어린이들 눈에 보이는 경찰관 아저씨들의 임무가 숨어서 딱지 떼..

이작가 2019.11.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