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여보 우리 내년에는 울릉도에나 갈까?
<!-BY_DAUM->
우리는 새벽안갯속을 뚫고 소풍 가는 어린이처럼 마음이 들떠있다. 느닷없이 왠 홍도 여행 간다고 새벽 4시에 일어나 송광면사무소에 근무하시는 박돌배 씨와 솜사탕 같은 김제댁 내외를 태우고 보성교육청에 근무하시는 공돌이와 자칭 공주님이 되어버린 두 분을 태우러 가고 있다.
벌교읍을 지나 잘 다듬어진 4차선 국도를 달리는 차속에서 김제댁이 넌지시 한마디 한다.
"50이 넘은 나이에 새벽을 달리며 콧노래를 부르고 즐거움으로 입이 귀에 걸린다는 게 우리가 정상일까?
보성에서 홍도 여행 가이드인 공돌이 씨 차를 타고서 녹음이 짙어있는 유달산을 지나서 목포항 여객터미널에 도착한 우리 일행은 너무나도 참담했다. 승선권 예약을 책임진 가이드가 요즘은 예약하지 않아도 탈 수 있다는 항운회사 직원의 전화 한마디에 예약을 하지 않았는데, 승선권이 매진이라 아침 배로는 홍도를 갈 수 없다니.
뱃멀미할까 봐서 아침도 먹지 않고 꿈에 그리던 홍도를 향해 3시간을 달려서 왔는데... 승선권은 어디 있나, 다 어디 갔나...
유달산아 말해다오 홍도 가는 방법을
우리는 기가 죽어 있는 가이드 공돌이 씨를 위로하고서 당일 여행을 갑자기 1박 2일 여행으로 변경해서 오후에 떠나는 쾌속선에 몸을 실었다.
뒷골목에 있는 허름한 모텔에 빈대가 기어 나올 것 같은 음침한 골방 두 개를 얻고 여섯 명 모두의 쌈짓돈을 몽땅 빼앗았다. 이곳에서는 카드를 사용할 수 없다니 절약하면 즐거운 여행이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어디 가나 여행이라는 게 먹고 즐기는 게 추억에 남는다는 의견에 누구나 'No' 하는 사람 없이 구경을 제쳐두고 벌겋게 지는 노을을 보면서 횟집에 자리를 잡았다.
몇 차례 술잔이 모였다 흩어졌다. "쨍"하는 맑은 소리가 연이었다. 공돌이 씨가
"여보 사랑해"
하면서 공주댁 입에 회를 넣어주면서 사건은 시작되었다. 아직까지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 들어보지 못한 솜사탕과 나는 신랑들이 무심했고 고개만 숙이고 있는 두 못난이는 우리의 끝없는 성화에 못 이겨
'여보 사~응'하는 말도 안 되는 끝맺음으로 횟집을 나왔다.
못난이를 남편으로 두고 잇는 솜사탕과 나, 그리고 행복에 젖어있는 공주댁 우리 셋은 노래방과 미니 나이트클럽을 온몸으로 청소했고 홍도의 밤을 우리의 밤으로 만들었다.
그 시각 못난이 남편들은 비싼 맥주값을 아끼려고 선착장 포장마차에서 소주를 마시며, '홍도야 우지 마라...'를 불렀단다.
이튿날 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풍랑주의보가 발령되었다는 소식이 들렸다. 모두가 걱정하는데 나는 태연했다. 폭풍주의보 속에서 녹동에서 제주까지도 여행해 본 기억이 잇으니 까짓 풍랑주의보쯤이야.
쾌속선이 홍도 내항을 벗어나는 순간 '이것이 뱃멀미구나.'라는 생각할 틈도 없이 중심 없이 흔들리는 뱃속에서 구토가 나오고 배 천장이 빙빙 돌고 그만 사경을 헤매고 말았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머리가 몽롱하고 입이 거칠거칠하고 목이 말라 정신을 차리고 보니 우리 남편 팔을 베고 누었는 것에 놀라 지그시 눈을 뜨고 사방을 살펴보니 객실 뒤의 화물칸 바닥에 누은 것이다. 주위에는 다른 사람들이 다들 누워있다.
나는 남편을 깨웠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남편은
"당신 괜찮아? 이것 버리고 올게. 당신이 토한 거 치우다 보니 나도 멀미가 나서 아직 버리지 못했어."
나는 감동했다. '여보 사랑해'라는 말을 못 해도 몸과 마음으로 나를 사랑해 주는 그이가 너무도 고맙다.
그런데 왜 나도 '여보 고마워'라는 말이 나오지 않을까. 나도 참 바보다.
다음에는 파도가 높아서 멀미가 더 심하더라도 동해안 울릉도 여행을 하고 싶다.
영원히 상동이의 아내이고싶은 복수니.